8月X日。
わけがあって、墨湖からの船で鬱陵島道洞へ渡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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船は、よくThailandなんぶ、Koh Samuiなどで動いているものに似ていた双胴船?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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片道2.5時間。結構¥波は荒く、吐く人もしばしば見た。 鬱陵島捜討官などは、帆掛け舟で二日、難破の危険性を伴いながら恐る恐る渡っていたのである。
そんな恐る恐る渡った1882年の李圭¥遠も、1899年の禹用鼎も、鬱陵島一帯のみが朝鮮領土という認識であったし、竹島(Liacnourt/独島)には全く興味も関心も示さなかったし、実効支配していた事実もなかった。
それどころか、鬱陵島調査員は、きっちりと今日の竹嶼に于山島と記載をしてい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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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図画像>
昼過ぎ・道洞到着。 谷間の斜面に這い蹲るように建物が建っている。
印象は、インドのダージリンやガントクの様だった。
ただ、鬱陵島は、道洞と芋洞以外は、全くの田舎や小集落なので、ここが大都会で有るような錯覚を受け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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鬱陵島は、日本海の南西からは暖流である対馬海流と、
北東からは寒流であるリマン海流が交錯する場所なので、水蒸気が発生しやすく、天気の変化が激しい。 また、湿気も熱帯のジャングル並であるように感じた。
到着初日。鬱陵島一周観光船に乗る。
出発を待っている間、烏賊売りのおばさんに烏賊を売りつけられる。同行者が値段を交渉もしないで買ってしまったのだが、中規模のスルメで、5000wもした。三陟であれば5000Wあれば大きいのが3-4枚買えたのに・・・・・
とりあえず、この鬱陵島一周観光船乗船により、長年疑問であった鬱陵島の付属島および岩などを把握できた。
北西から時計回りに、 亀岩、獅子岩、熊岩、屏風岩、朱土窟、香木亭の先に有る岩、象岩(孔岩)と其の付属岩礁、老人峯、錐山、竹岩、 三仙岩の牛角岩、三仙岩の双子岩、獅子のように這った岩、天女のプール付近の燭臺岩、 島項、観音島(小于島)、竹嶼Boussole Rock(于山島)、兜岩、燭立など、鬱陵島沿岸を取り巻く小さい岩を把握することが出来た。
また、朝鮮王朝の捜討官(現地調査員)が、鬱陵島を正確に捉えていたかも理解できた。彼らの鬱陵島の製作した鬱陵島詳細地図においては、竹島(Liacourt Rocks/独島)はどの地図にも含まれていなかったのである。
<地図画像・ソ¥ウル大学圭¥章閣鬱陵島圖形.1711>
<地図画像・三陟博物館鬱陵島圖形>
<地図画像・韓国中央図書館鬱陵島圖形>
<地図画像・ソ¥ウル大学圭¥章閣李圭¥遠 鬱陵島外圖 1882>
Seal Point <写真>
亀岩<写真>
獅子岩<写真>
熊岩<写真>
可支岩<写真>
屏風岩<写真>
朱土窟<写真>
香木亭の先に有る岩<写真>
象岩(孔岩)と其の付属岩礁<写真>
老人峯<写真>
錐山<写真>
竹岩<写真>
三仙岩の牛角岩<写真>
三仙岩の双子岩<写真>
獅子のように這った岩<写真>
天女のプール付近の燭臺岩<写真>
島項、観音島(小于島)<写真>
竹嶼Boussole Rock(于山島)<写真>
兜岩<写真>
燭立<写真>
2日目
道洞から路線バス(1500w)に乗り、沙洞・通九味・南陽洞・臺霞・玄圃を今度は陸から見て、天府にて石圃に行く。
鬱陵島は、低標高(200m)付近から雲が低くかかっており、なんと、石圃から、竹島(Liacnourt)どころか、竹嶼(Boussole/于山島)も、観音島も見ることが出来ない始末。おそらく天気の時には竹嶼も観音島もここから見えるのではないであ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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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府に戻って羅里洞のキャンプサイトへテントを張る。
羅里は農地が広がっており、鬱陵島で一番農業に適した盆地であることがよくわか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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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里洞へは片道2-3時間程度だが、今回は疲れの成果、2.5時間かかって聖人峰に登頂。しかし曇りで何も見え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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角度的な関係から、ここからはおそらくは北部の錐山や羅里などしか見えない可能¥性が有る。竹嶼などがある東岸は見えそうもない。結局、結局羅里のキャンプサイトに戻る。
このあと、豪雨に見舞われる。羅里で食った山菜ビビンパは、今まで韓国で食ったビビンパのうち、一番うまかった。
3日目、天候がさえないため、ミニバスにて羅里から天府を経て石圃へ行き、そこから路線バスにて道洞へ一旦戻る。
天気も悪いので何もする気が起きなかったが、一旦道洞に戻ったあと、やることもないので鬱陵島の地勢の把握の為に、再び羅里や石圃、島項へ行く。前日同様、低標高に雲がかかってしまい、竹嶼すら見えず。石圃にもそこそこ農地があったが、羅里ほどでは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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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で、貴重な話を聞くことが出来た。なんと、20数年前まで、観音島に人が住んでいたというのである。
観音島はこんにちは全くの無人島であるが、当時は、島でウサギとヤギの放牧が行われていて、それを売るためにケーブルにて鬱陵島の本島との間を輸送していたのである。 当時、道路建設の計画が上がったのだが、予¥算が下りずに結局立ち消えとなったそうである。20数年前といえば、蔚珍の待風所にあった捜討官の鬱陵島調査の文献を証拠隠滅の為に焼いてしまった事件があった頃と同じ時期で有るが、関連は有るの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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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日目 天候がよくなったので、再び聖人峰に登頂するために、羅里へと向かう。
登る前は晴れていて、天府からは錐山と老人峯が、羅里から鬱陵島三峰を見ることが出来たが、登頂した頃には、すでに標高の低い部分に霧が発生しており、日本海側などが見えず。 また、角度的な関係から、ここからはおそらくは錐山や羅里などしか見えない可能¥性が有る。東側に日本海が見えるとすれば、聖人峰からではなく、聖人峯の北東に有るレーダーサイトらしき建築物が有る山からであろう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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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のまま沙洞のKBSのほうまで降りていくと、この辺りは、いわばで農地が狭い鬱陵島にしては、羅里に次いで芋畑など、農地が多く感じた。芋を売っているばあさんに芋を買えと強要されるが、10000wと、三陟で売っている倍の値段を吹っかけてくるので、止めた。
其の後は、道洞から芋洞につながる、海岸の崖/洞窟付近の散策ルートをあるく。この辺りの海もエメラルドブルーの美しい色になっており、夜はライトアップも効果を剰じて幻想的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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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日目、いよいよ于山島(竹嶼、Boussole Rock)へ渡る。1711年の鬱陵島詳細圖において、于山島海長竹田と書かれた島である。とうぜん今日の竹島(Liacnourt Rocks)ではない。
船はたいした波でもないのに、並みの状況を待って、遅れて出発するか、欠航になるかという状態だったが、なんとか一時間遅れで出航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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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図画像・青邱圖 鬱陵島 金正浩1834>
(続く)
8월 X일.
(뜻)이유가 있고, 묵호로부터의 배로 울릉도도동에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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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자주(잘) Thailand, Koh Samui등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닮아 있던 쌍동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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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도 2.5시간.상당히물결은 난폭하고, 토하는 사람도 자주 보았다. 울릉도수토관 등은, 범선으로 이틀, 난파의 위험성을 수반하면서 조심조심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조심조심 건넌 1882년의 이 케이원도, 1899년의 우용정도, 울릉도 일대만이 조선 영토라고 하는 인식이었고, 타케시마(Liacnourt/독도)에는 전혀 흥미도 관심도 보이지 않았고, 실효 지배하고 있던 사실도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울릉도 조사원은, 제대로 오늘의 죽서에 우야마시마와 기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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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화상>
오후·도 동도착. 골짜기의 경사면에 겨 웅크리고 앉도록(듯이) 건물이 세우고 있다.
인상은, 인도의 다질링이나 간트크의 같았다.
단지, 울릉도는, 도 동과 우동 이외는, 완전한 시골이나 소취락이므로, 여기가 대도시에서 있는 착각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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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는, 일본해의 남서에서는 난류인 쓰시마해류와
북동에서는 한류인 리만 해류가 교착하는 장소이므로, 수증기가 발생하기 쉽고, 날씨의 변화가 격렬하다. 또, 습기도 열대의 정글수준인 것처럼 느꼈다.
도착 첫날.울릉도 일주 관광선을 탄다.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오징어 매도의 아줌마에게 오징어를 강매할 수 있다.동행자가 가격을 교섭도 하지 않고 사 버렸지만, 중 규모의 오징어로, 5000 w도 했다.3척이면 5000 W 있으면 큰 것이3-4매 살 수 있었는데·····
우선, 이 울릉도 일주 관광 선원선에 의해, 오랜 세월 의문인 울릉도의 부속섬 및 바위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북서에서 시계회전에, 카메이와, 시시바위, 웅암, 병풍바위, 주토굴, 향나무정의 끝에 있는 바위, 상암(공암)과다른 부속 암초, 노인봉우리, 추산, 죽암, 3 센간의 우각 바위, 3 센간의 쌍둥이바위, 사자와 같이 긴 바위, 선녀의 풀 부근의 촉대암, 도항, 관음섬(소우도), 죽서Boussole Rock(우야마시마), 두암, 촉립 등, 울릉도 연안을 둘러싸는 작은 바위를 파악할 수 있었다.
또, 조선 왕조의 수토관(현지조사원)이, 울릉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그들의 울릉도의 제작한 울릉도 상세 지도에 있어서는, 타케시마(Liacourt Rocks/독도)는 어느 지도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지도 화상·소울 대학규장각 울릉도도형.1711>
<지도 화상·3척박물관 울릉도도형>
<지도 화상·한국 중앙 도서관 울릉도도형>
<지도 화상·소울 대학규장각이 케이원울릉도외도 1882>
Seal Point <사진>
카메이와<사진>
사자바위<사진>
웅암<사진>
가지암<사진>
병풍바위<사진>
주토굴<사진>
향나무정의 끝에 있는 바위<사진>
상암(공암)과다른 부속 암초<사진>
노인봉우리<사진>
추산<사진>
죽암<사진>
3 센간의 우각 바위<사진>
3 센간의 쌍둥이바위<사진>
사자와 같이 긴 바위<사진>
선녀의 풀 부근의 촉대암<사진>
도항, 관음섬(소우도)<사진>
죽서Boussole Rock(우야마시마)<사진>
두암<사진>
촉립<사진>
2일째
도 동으로부터 노선버스(1500 w)를 타, 사동·통9미·남양동·대하·현포를 이번은 육지에서 보고, 천부에서 석포에 간다.
울릉도는, 저표고(200 m) 부근으로부터 구름이 낮게 걸리고 있어 무려, 석포로부터, 타케시마(Liacnourt)는 커녕, 죽서(Boussole/우야마시마)도, 관음섬도 볼 수 할 수 없는 시말.아마 날씨때에는 죽서도 관음섬도 여기로부터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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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로 돌아와 라리동의 캠프 사이트로 텐트를 친다.
라리는 농지가 퍼지고 있어 울릉도에서 제일 농업에 적절한 분지인 것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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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동에는 편도2-3시간 정도이지만, 이번은 피로의 성과, 2.5시간 걸려 성인봉우리에 등정.그러나 흐림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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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적인 관계로부터, 여기에서는 어쩌면 북부의 추산이나 라리등 밖에 안보이는 가능성이 있다.죽서등이 있는 동해안은 보일 것 같지도 않다.결국, 결국라리의 캠프 사이트로 돌아온다.
이후에, 호우에 휩쓸린다.라 사토로 깔본 산채 비빔밥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먹은 비빔밥 가운데, 제일 능숙했다.
3일째, 기후가 신통치 않기 때문에, 미니 버스로 라리로부터 천부를 거쳐 석포에 가, 거기로부터 노선버스로 도 동에 일단 돌아온다.
날씨도 나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생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일단도동으로 돌아온 뒤, 할 것도 없기 때문에 울릉도의 지세의 파악을 위해, 다시 라리나 석포, 도항에 간다.전날 같이, 저표고에 구름이 걸려 버려, 죽서조차 보이지 않고.석포에도 적당히 농지가 있었지만, 라리만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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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귀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무려, 20 몇년전까지, 관음섬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관음섬은 안녕하세요 완전한 무인도이지만, 당시는, 섬에서 토끼와 염소의 방목을 하고 있고, 그것을 팔기 위해서 케이블로 울릉도의 모토지마와의 사이를 수송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 도로 건설의 계획이 올랐지만, 예산이 나오지 않고 결국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20 몇년전이라고 하면, 울진의 대풍소에 있던 수토관의 울릉도 조사의 문헌을 증거 인멸을 위해 구워 버린 사건이 있었을 무렵과 같은 시기에 있지만, 관련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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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째 기후가 좋아졌으므로, 다시 성인봉우리에 등정하기 위해서, 라리로 향한다.
오르기 전은 개여 있고, 천부에서는 추산과 노인봉우리가, 라리로부터 울릉도 산포우를 볼 수 있었지만, 등정했을 무렵 , 벌써 표고의 낮은 부분에 안개가 발생하고 있어, 일본해측등이 보이지 않고. 또, 각도적인 관계로부터, 여기에서는 어쩌면 추산이나 라리등 밖에 안보이는 가능성이 있다.동쪽으로 일본해가 보인다고 하면, 성인봉우리로부터가 아니고, 성인봉우리의 북동으로 있는 레이더-사이트 같은 건축물이 있는 산으로부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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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로 사동의 KBS 쪽까지 내려 가면, 이 근처는, 말하자면으로 농지가 좁은 울릉도으로서는, 라리에 이어 우전 등, 농지가 많이 느꼈다.감자를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 감자를 사라고 강요받지만, 10000 w로 3척으로 팔고 있는 배의 가격을 내뿜어 오므로, 멈추었다.
그 후는, 도 동으로부터 우동으로 연결되는, 해안의 벼랑/동굴 부근의 산책 루트를 걷는다.이 근처의 바다도 에메랄드 블루의 아름다운 색이 되어 있어, 밤은 라이트 업도 효과를 잉 글자라고 환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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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째, 드디어 우야마시마(죽서, Boussole Rock)에 건넌다.1711년의 울릉도 상세도에 대하고, 우야마시마해 나가타케논이라고 쓰여진 섬이다.당연 오늘의 타케시마(Liacnourt Rocks)는 아니다.
배는 별 물결도 아닌데, 보통의 상황을 기다리고, 늦어 출발하는지, 결항이 되는가 하는 상태였지만, 어떻게든 1시간 늦게 출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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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화상·청구도울릉도 김정호 1834>
(계속 된다)